아픔을 알지 못하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
아픔의 감각이 없어 때에 따라서는 주변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우리는 보통 팔을 강하게 잡으면 아프다는 것을 안다. 맞으면 아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좀 더 강하게 맞으면 그만큼 더 아프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에 관한 지식은 자기 자신이 아프다는 경험을 한 뒤 비로소 몸에 배는 것이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많은 경험을 온몸으로 체험해 와서, 그 아픔을 알 수 있다. 쓰다듬을 때와 비빌 때, 툭 칠 때와 때릴 때 힘의 강도에 따라 아픔이 어떻게 다른지는 우리 신체로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픔이란 감각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하면 얼마만큼 아픈지를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그 힘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다.
애정표현을 한답시고 손을 꾹 쥐면, 너무 강해서 상대방의 손목에 멍이 든다. 장난 삼아 상대의 팔을 잡아당기면 팔을 접질린다. 장난 삼아 옆구리를 때리면 갈빗대가 나갈지도 모른다. 이런 만화와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본인에게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이 없더라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주변 사람도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1대 1로 맞붙어 싸우지 않기 때문에 힘의 정도를 알지 못하고, 막상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된다'고들 하는데,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단지, 간단히 '경험이 없다'는 것뿐이라면, 경험을 쌓음으로 힘의 정도나 아픔을 알 것이다.
무릇 감각이란 것이 없다면, 경험의 축적도 없는 것이다.
아픔이라는 감각이 우리에게 천성적으로 갖추어진 것은, 환경 안에서 문제없이 살아나가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했던 이야기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통각과 같이 우리에게 다양한 감각이 있다는 점에서는, 제각기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감각의 기능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손으로 소리를 듣는다?
빛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거의 사물을 볼 수가 없으며, 나이를 먹고 귀가 먹으면 보청기나 집음기를 사용하여 조금이라도 소리를 잘 들으려고 한다. 분명, 오감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람에게는 사물은 눈으로 보는 것이며,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시각에는 빛, 청각에는 소리와 같이 감각의 종류 개개의 특성에 걸맞은 자극이 이미 정해져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적자극'이라 부른다. 그런데 어떠한 경우에나 사물은 눈, 소리는 귀라는 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특별한 예를 소개하겠다.
우리가 악기 연주를 들을 때에는 보통 귀로 듣는다. 그러나 귀 이외의 신체에서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듣는다기보다는 '느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부풀어 오른 풍선을 가지고, 악기 앞에 세워보자. 악기가 소리를 내면 손에 쥐고 있던 풍선이 덜덜 떨리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리를 손으로 듣는다는 것이다. 이때, 귀마개를 하고 최대한 소리를 작게 줄이면, 더 큰 진동의 형태로 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로부터, 실제로 소리라는 것은 공기의 진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치에서 말하자면, 악기에 따라 가령 콘트라베이스와 플르트로는 풍선의 떨림도 달리 느낄 수 있게 된다. 본래 청각으로 느껴야 할 소리라는 자극을, 피부라는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예라 하겠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각은 변화해 간다 (0) | 2025.03.29 |
---|---|
인간의 초능력 감각대행(2) (0) | 2025.03.28 |
아픔과 인간관계 (0) | 2025.03.26 |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행복할까? (0) | 2025.03.25 |
기억을 고쳐 쓰는 방법 (0) | 2025.03.24 |